전 세계에서 사랑받는 미국 뉴욕시의 브랜드 '아이러브 뉴욕(I♥NY)'을 디자인한 밀턴 글레이저가 향년 91세로 별세했다. 뉴욕타임즈는 지난 6월 26일 그가 뇌졸중으로 세상을 떠났다고 보도했다. 이 날은 그의 91세 생일이기도 하다.
이번 포스팅은 그의 생애를 기리며, '아이러브 뉴욕(I♥NY)' 디자인의 탄생 배경과 그의 이야기에 대해 짧게 다뤄보고자 한다.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로고
뉴욕을 가본 사람들 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서 이 디자인을 모르는 사람이 더 힘들 것 같은 로고가 있다. 바로 " I ♥ NY " 이다. 티셔츠, 머그컵뿐만 아니라 다양한 곳에서 이 로고는 쓰이고 있으며, 이 로고를 시작으로 다른 국가의 도시들 또한 벤치마킹할 정도로 세계에서 가장 유명하고 많은 사람들이 사랑하는 로고다.
I ♥ NY 의 탄생 배경
이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로고는 1977년 뉴욕시의 의뢰로 밀턴 글레이저에 의해 창작되었다. 당시 제1차 석유파동 직후 전 세계가 극심한 경제 불황을 겪고 있었는데, 뉴욕주 상무국이 시민들에게 희망을 주고자 기획한 광고 캠페인에서 탄생했다고 한다.
공식적으로는 시민들에게 희망을 주고자 했다고 하나, 사실은 경제적인 문제가 컸던 것으로 보인다. 1970년대 당시 뉴욕주는 10억 달러에 이르는 적자와 파산의 조짐, 해고된 30만 명의 실직자와 범죄자의 증가, 환경미화원들의 파업 등으로 극심한 곤경에 처해있었다고 한다. 뉴욕주는 지금과 달리 그 당시 관광으로도 전혀 인기가 없는 도시였다.
이에 뉴욕주 상무국은 당시 뉴욕에 근거지를 두고 있던 일러스트레이터이자 그래픽 디자이너인 밀턴 글레이저에게 로고를 의뢰한다.
I ♥ NY 의 창작자, 밀턴 글레이저
1929년 미국 뉴욕시 브룽크스에서 태어난 밀턴 글레이저는 맨해튼의 쿠퍼 유니언 대학을 졸업했으며 이탈리아에서 미술을 공부하기도 했다. 1954년 글레이저는 쿠퍼 유니언 동문들과 함께 '푸시핀 스튜디오(Push Pin Studios)'를 설립했다.
아르누보에서부터 중국 수묵화, 독일 목판화, 만화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얻음 영감을 통해 상업 예술에 새로운 비주얼 언어를 제시하는데 역할을 했다.
그는 1967년 발매된 밥 딜런의 앨범에 포함된 포스터를 디자인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그가 제작한 밥 딜런의 포스터는 마스셀 뒤샹의 초상화를 기반으로 뮤지션의 실루엣을 표현했는데, 특히 이슬람 예술에서 차용한 방식으로 머리카락에 밝은 색을 입혔다. 이 앨범은 무려 600만 장이나 판매되었다.
이후 1968년 글레이저는 뉴욕매거진을 공동 창립하고 디자인 책임자로 9년간 일했으며, 1974년 디자인 회사 '밀턴 글레이저'를 설립했다.
택시에서 떠오른 아이디어
글레이저는 이 광고 캠페인을 위한 그래픽 작업을 의뢰 받고 고심하다 택시를 타고 가던 중 냅킨에 낙서를 하듯 빨간 크레용으로 스케치하다 로고 아이디어를 떠올렸는데 이렇게 만든 것이 바로 '아이러브 뉴욕(I ♥ NY)이라고 한다(이 최초의 스케치는 현재 뉴욕 현대미술과(MoMA)에 남아있다).
이렇게 시작된 '아이 러브 뉴욕' 광고 캠페인은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다. 뉴욕주는 광고 집행 1년 뒤 관광 수입이 1억 4천만 달러나 증가했다. 그러나 그는 이 디자인으로 단 한푼의 돈도 벌지 못했다. 그는 공공 캠페인의 목적으로 이를 작성했다고 생각했으며, 이후 저작권을 뉴욕시에 무상으로 양도했다. 현재 뉴욕이 티셔츠와 모자 등의 상품으로 매년 3,000만 달러 이상을 벌어들이는 것을 생각했을 때 정말 대단한 결정이라고 할 수 있다.
9. 11 테러 이후 'MORE THAN EVER' 문구 추가
그는 단지 디자인만을 생각하는 디자이너가 아니었다. 9.11 테러 이후 그는 자신이 디자인한 '아이 러브 뉴욕(I ♥ NY)을 다시 디자인하여 '아이 러브 뉴욕 모어 댄 에버)'라는 포스터를 제작하였다. 이 포스터는 2001년 9월 19일자 뉴욕 데일리 뉴스를 통해 뉴욕 시민들의 손에 전해졌고 배포되자마자 시민들로부터 큰 공감을 얻어 뉴욕 거리 곳곳에 수백만 부가 붙여졌다.
사회적 참여가 활발했던 디자이너
그는 사회참여적인 활동도 많이 하였다. 그 중 하나가 1964년 켄 갈런드와 그의 동료 디자이너 22인에 의해 만들어진 '중요한 것을 먼저 하라(First Things First)'다.
뿐만 아니라 2005년에는 보스니아 출신의 일러스트레이터인 미르코 일리치와 함께 세상의 모든 부조리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담은 전 세계 디자인 작품 400여 점을 보아 '불찬성의 디자인(The Design of Dissent)'라는 제목의 작품집을 내기도 했다.
그는 그래픽 디자인 뿐만 아니라 인테리어, 건축, 회화 등 여러 장르를 넘나들며 엄청난 양의 작업을 해왔으며, 이러한 그의 직업을 시민사회와 구별되는 특별할 것이 아니라 시민사회에 속하는 것으로 인식하고 또 그것을 평생에 걸쳐 실천하였다.
마치며
그는 세계에서 가장 사랑 받는 로고를 만든 사람으로 영원히 기억되겠지만, 우린 그가 단순한 디자이너가 아니라 사회에 선한 영향을 주고 모범적인 어른으로 우리에게 이야기를 건네었다는 사실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그가 생전에 남겼던 이야기들을 적으며 마무리하고자 한다.
" 사소하고 별 것 아닌 아이디어에서 이런 엄청난 반향이 일어났다는 점에 매우 놀랐다 "
" 디자이너의 역할은 어느 선량한 시민의 역할과 다를 바 없다. 좋은 시민이란 민주주의에 참여하고 견해를 피력하고, 한 시대에 자신의 역할을 인식하는 사람들을 뜻한다. 이는 디자이너이기 때문에 더 많은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우리 모두가 좋은 시민이 되기 위한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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